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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 임무/제3장 - 페나코니

스타레일 페나코니 - 3.3.4 내일을 향해 쏴라

by 회색둥이 202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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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향해 쏴라」는 1969년 영화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의 마지막 장면에서 따온 오마주입니다.
그 장면은 패배를 앞둔 무법자들이 총을 들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자유와 존엄을 지키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본 챕터에서는 이 오마주를 차용해, 꿈세계의 허구에 맞선 개척자 일행의 결단과 투쟁을 그립니다.
‘쏜다’는 행위는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체제의 거짓을 부정하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선언입니다.
레버리 호텔과 선데이의 붕괴는 감정 소비 시스템의 종말이며, 새로운 현실을 여는 출발점이 됩니다.
반디의 선택 또한 감정과 정체성의 회복을 의미하며, 허상 속 질서로부터의 탈출을 상징합니다.
이 챕터는 꿈세계 서사의 절정이자, 거짓에 맞선 첫 번째 진짜 행동의 순간입니다.
결국 “내일을 향해 쏴라”는 감정과 진실, 인간다운 내일을 되찾기 위한 저항의 선언입니다.



부트힐
(동료의 행방이 묘연하니 단항도 조급하겠지. 걱정은 판단력을 흐리는 독약이니 잠시 시간을 주는 게 좋겠어)



제이노
조화의 축제가 곧 시작된대요. 정말 기대된다~

 

부트힐
여어~ 다들 조화의 축제 때문에 온 거야?

 

제이노
일부러 찾아온 건 아니에요! 마침 타이밍이 맞은 거죠. 정확히 어떤 축제인지는 모르지만 무척 인기라고 들었어요

 

사브리나
후후, 그 정도 축제는 우리 아나리아에 널리고 널렸죠! 이 조화의 축제보다 부황께서 열어주신 생일파티가 훨씬 더 성대했다고요!

 

제이노
허풍도 참! 조화의 축제는 한 앰버기원마다 열리는 축제인데, 어떻게 그쪽 생일파티 비용과 비교가 되겠어요?

 

부트힐
그건 아니지. 이쪽도 한 앰버기원마다 생일파티를 할지도 모르잖아?

 

부트힐
그보다 혹시 들었어? 꿈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던데… 뭐 아는 거 없냐?

 

제이노
네? 무슨 일이요? 설마 조화의 축제를 망치는 건 아니겠죠? 안 돼, 정말 오래 기다렸단 말이에요!

 

사브리나
뭘 그렇게 호들갑을. 원래 이런 대규모 축제를 앞두고는 다양한 소문이 떠도는 법이라구요. 걱정 마요, 정말 무슨 일이 있다면 제일 급한 건 가족일 테니까요

 

부트힐
오, 그럼 다행이고! 모처럼 성대한 축제를 즐기러 왔는데 사고라도 날까 봐 걱정했거든!
(흠, 이 베이비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괜히 기운 빼지 말자고)



코티
안녕하세요, 전 호텔의 보안 담당자인 사냥개 가문의 코티라고 해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부트힐
뭐 하나만 물을게…. 꿈에 무슨 일이 생겨서 조화의 축제에 영향이 있을 거라고 들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지? 축제를 위해 하이아이 연방에서 왔는데 헛걸음한 건 아니었으면 좋겠군!

 

코티
음… 네?

 

부트힐
전혀 모르는 일이야?

 

코티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으셨는진 몰라도 그런 소문은 믿지 마세요.
사냥개 가문의 일원으로서 축제가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다는 걸 장담하죠

지금은 조화의 축제를 제때 개최하는 게 모든 가문의 급선무예요.
이번엔 「꿈의 주인」께서도 직접 일선으로 가셨으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절대 헛된 여정이 되지 않을 겁니다

 

부트힐
하! 그렇다면 안심이야
(연기 같진 않아. 그 말인즉슨 호텔 직원조차 무슨 일인지 모른다는 건데)



부트힐
왔나?

 

단항
아직도 기다리는 중인가?

 

부트힐
그래, 이제 슬슬 선데이에게 연락하라고 보낸 게 잘못된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직원이든 손님이든 하나같이 꿈속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있고, 어딜 가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만 펼쳐질 뿐이야… 아무래도 예감이 안 좋아

 

단항
동감이야. 수상한 점이 또 있어. 페나코니를 관리하는 5대 가문 중 참나무 가문은 의회의 주최자이자 꿈세계 안팎의 관리와 조율을 담당하는 책임자야. 그런데……
호텔 전체를 둘러봤지만 중요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 가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더군

 

부트힐
이런 족발… 아까 참나무 가문의 가주가 선데이라고 하지 않았나?

 

단항
여긴 위험하니 우선 열차로 돌아가자고

 

부트힐
섣불리 움직이지 마. 혹시 컴퍼니를 털어본 적이 있나, 브라더? 도망치는 순간 넌 이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녀석이 될 거야

 

단항
그럼 이대로 잠자코 기다리자고?

 

부트힐
꼭 잠자코 있을 필요는 없지만 우선은 기다리자고.
가족이 음모를 꾸몄다 한들 우리가 올 거라곤 예측 못했을 테지. 그들에겐 우리야말로 「불확실한 요소」야
그러니 그들도 섣불리 나서진 않겠지. 우리뿐만이 아니라 가족도 외부인의 관심을 끌지 않게 조심하고 있을 거라고… 보여? 이 호텔에는 감시 중인 컴퍼니 놈들도 있어

 

단항
…내가 가족이라면 절차를 핑계로 불확실한 요소를 이곳에 묶어뒀을 거야. 굳이 놈들의 함정에 빠질 필요는 없어

 

부트힐
물론 그들과 소모전을 벌일 필요는 없어. 그 기억하는 자에게 「플랜 B」를 남겨뒀거든. 꿈세계에 들어갈 방법이 정말 없다면, 그 여자가 현실 호텔의 VIP 라운지에 술 한 병을 남겨둘 거야

 

단항
접선 암호인가?

 

부트힐
그래

 

단항
물건으로 당신과 기억하는 자를 연결할 수 있긴 하지만… 부트힐 씨, 앞으로는 플랜 B의 존재를 미리 알려줬으면 해

 

부트힐
쏘리, 그냥 내 버릇이라고 생각해. 내게 악질인 친구가 몇 있는데, 계획을 밝히면 온갖 방해를 해대는 탓에 대책이 몇 개라도 부족하거든



단항
VIP 라운지엔 어떻게 들어가지?

 

부트힐
식은 죽 먹기야. 강호의 지혜를 보여줄게



부트힐
당신이 이곳의 로비 매니저인가?

 

데니스
그렇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부트힐
우린 은하열차의 무명객이야. 체크인을 하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없어서 말이지! 프런트에 있던 아가씨는 책임자에게 연락한다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한참을 이러고 기다렸는데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안 내주다니. 흑 같은… 가족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접하나?

 

단항
「강호의 지혜」라는 게 트집 잡기였어?

 

부트힐
이건 정당한 권익을 챙기는 거라고

 

데니스
진정하세요. 자초지종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희도 우선 선데이 님과 연락이 닿아야 해서요. 귀빈실의 바 자리를 내어드릴 테니 쉬시면서 기다리는 게 어떠신지요?

 

부트힐
봐, 성공이지?

 

단항
…어디 가서 무명객이라고 하고 다니지 마



부트힐
오! 현실 호텔의 바도 이렇게 화려하다니, 역시 축제의 별답군



앤더슨
좋은 저녁입니다, 두 분

 

부트힐
흠... 형씨, 「아스다나 백참나무」를 킵해뒀는데 좀 찾아줄 수 있을까?

 

앤더슨
아스다나 백참나무요? 뭔가 착각하신 것 같네요. 저희 바엔 그런 음료 없습니다

 

부트힐
그럴 리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

 

앤더슨
그렇게 비싼 음료를 킵해두셨다면 제가 똑똑히 기억했을 겁니다. 한 병당 수십만 신용 포인트인 음료라…
깨뜨리거나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끝이거든요

 

부트힐
이상하네… 설마 그 기억하는 자에게 살 돈이 없는 건가?

 

단항
이제 어쩌지?

 

부트힐
급할 것 없어. 우선 마시고 있자고. 어쩌면 내가 너무 빨리 와서 아직 안 온 걸지도 모르니
여기 어떤 맥아 주스가 있는지 봐야겠군… 「힌놈 밸리 40년산」 한 잔 줘. 얼음 없이 부탁하지

 

앤더슨
메뉴에서 가장 비싼 음료를 고르셨군요.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부트힐
흣, 공짠데 기왕이면 비싼 걸로 마셔야지……

 

앤더슨
손님은 뭘 주문하시겠어요?

 

단항
아무거나 상관없어

 

앤더슨
그럼 오늘의 특제 음료 「글라스 빌리지」를 내드리죠.
클래식 솔글래드에 레몬주스를 섞어 청량감이 일품입니다. 손님의 쿨한 분위기와도 어울릴 것 같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부트힐
캬아! 이 과산화수소수를 바른 화약 바비큐 맛은 정말이지… 일품이네!
역시 은하 최고의 세리 통에서 숙성된 맥아 주스야

 

단항
「과산화수소수를 바른 화약 바비큐 맛」… 정말 인간이 좋아할 수 있는 맛인가?

 

부트힐
하하, 이 베이비는 술맛을 전혀 모른다니까

 

앤더슨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부트힐
시스템 시간 반 시간 후에도 기억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그 시간이면 상황을 분석하기에 충분해. 네가 보기엔 뭐가 문제인 것 같아?

 

단항
확실히 상황이 안 좋아. 축제의 별에 무슨 일이 생겼는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어. 아마 가족의 권위자가 상황을 숨기고 있는 거겠지
「화합」이 다른 파벌을 초대한 것도 이상해. 심지어 컴퍼니와 우인도 포함돼 있고. 네가 「공허」의 사도에 관해 말한 게 사실이라면 지금 페나코니는… 아주 복잡한 형국일 테지

 

부트힐
사실 「아케론」에 관해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하나 더 있어
너도 알다시피 「수렵」을 신봉하는 파벌은 은하에서 가장 건드려선 안 되는 무리야. 정신이 제대로 박힌 녀석이라면 선주 연맹이나 갤럭시 레인저를 사칭하지 않을 거야. 스스로 죽음에 뛰어드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단항
선주에 그런 말이 있잖아. 천궁은 빛의 화살을 통해 망령을 내릴 뿐이다——

 

부트힐
망령이 아니라 명령이겠지
별 차이도 없구만, 알아들으면 된 거지. 아무튼 우리 갤럭시 레인저가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어도, 계속 이 우주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수많은 무식한 베이비들이 소멸파는 건드려도 레인저는 감히 건드리지 못하지

하지만 아케론이 한 일만 놓고 보면… 정신 나간 녀석은 아닌 것 같아. 오히려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지. 봐줄 땐 봐주고, 결단력이 필요할 땐 가차 없잖아

 

단항
그런 사람이 갤럭시 레인저의 이름을 빌린 데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부트힐
확실한 건 아니야. 그냥 좀 미심쩍다는 거지. 어쩌면 그 여자가 정말 갤럭시 레인저를 알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이유로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게 하려는 걸지도 몰라

 

단항
그보다 난 가족의 수상한 태도가 신경 쓰여. 이 축제 때문에 십여 개의 운명의 길을 걷는 자들이 페나코니에 모였어. 아무리 가족의 포용력이 크다 해도, 이런 행동은 이례적이야
초대장을 보낸 게 가족이 아니라면 모를까, 이런 상황에서 가족이 조화의 축제를 열려고 고집하는 게… 더더욱 의미심장해

 

부트힐
모든 게 「화합」 시페의 지시일지도 몰라. 네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그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야
인간은 비이성적인 충동으로 멍청한 짓을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원칙을 포기할 뿐 아니라 믿지 말아야 할 것도 믿곤 해. 심지어는 자신이 갓 세운 규칙을 깨기도 하지
하지만 에이언즈는 달라. 에이언즈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기 전까진 앞만 보고 가거든—— 아니, 부딪혀도 뒤를 돌아보지 않아!

 

단항
사건의 배후에 시페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는 거야?

 

부트힐
시페가 아니라도 어떤 형이상적 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건 확실해. 너무 비관적이라고 하진 마. 인간의 자유 의지를 믿을 수 있다면, 갤럭시 레인저가 왜 필요하겠어?
모든 걸 에이언즈와 운명의 길로 귀결시키면 그렇게 복잡할 것도 없어. 란이 영원히 「수렵」의 길을 걷고, 아키비리의 종적이 묘연해도 열차가 개척의 길을 질주하며 영원히 탈선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

 

단항
하지만 난 아키비리의 죽음 또한 그분이 무명객에게 남긴 소중한 유산이라고 생각해

 

부트힐
아아, 무명객이 「절대적으로 옳은」 지도자를 잃은 후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게 돼서 그런 건가?

 

단항
그래, 난 여정의 의미가 「절대적으로 옳은」 길을 걷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수많은 길 중에서 제한된 식견과 판단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맞는 길」을 선택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

 

부트힐
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진 모르겠지만, 사람은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동감이야. 누구도 자신을 대신해 줄 수 없지
그렇기 때문에 갤럭시 레인저는 반드시 그 사칭범을 찾아내… 녀석의 목적을 알아내야 해



부트힐
혹시라도 그 기억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을 걸 대비해 플랜 C를 마련해 뒀지… 이게 마지막이야

 

단항
대책이 참 많네

 

부트힐
사실 난 이렇게 질질 끄는 건 딱 질색이야. 본업으로 돌아간다면 많은 일들이 단순해질 텐데
이봐, 단항, 아까 호텔을 둘러볼 때 혹시… 신분이 높아 보이는 손님이 있었나?

 

단항
…그건 왜?

 

부트힐
간단해. 그 손님들을 인질로 삼으면 일 처리가 훨씬 수월해질 거야. 가족과 협상할 수도 있고, 그들의 신분을 빌릴 수도 있겠지——

 

단항
그건 됐어. 지금 바로 열차로 돌아가지

 

부트힐
뭐? 설마 겁먹은 거냐? 우린 큰일을 처리하니 어서 창을 꺼내 들라고!

 

앤더슨
가시는 겁니까? 그럼 조금 전 주문하신 아스다나 백참나무는 취소해 드리면 되죠?

 

부트힐
…하? 아스다나 백참나무? 하지만 조금 전에 분명……

 

앤더슨
하하, 두 분께서 취하신 모양이군요. 조금 전, 제게 아스다나 백참나무를 주문하셨잖습니까

 

단항
아무래도… 기억하는 자 친구가 찾아온 모양이야

 

부트힐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몸을 과하게 개조했더니 이렇게 잘 깜빡깜빡한다니까! 어디 보자… 이런 벌어먹을, 정말 아스다나 백참나무잖아. 글자도 적혀 있고…

…『은하열차에서 기다릴게』

 

단항
그녀가 남긴 메시지인 게 확실해. 우리가 함께 움직이는 걸 알고 있고, 호텔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도 알아서 제3의 장소를 찾은 거지

 

부트힐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은하열차군! 더 기다릴 것도 없지. 어서 가자고!



폼폼
왔어? 조금 전 부트힐 승객을 찾는다며 두 사람이 왔길래 우선 관람 칸에서 기다리라고 했어

 

부트힐
오! 때맞춰서 잘 왔군

 

단항
…두 사람?

 

폼폼
저 여자야. 은하열차가 모든 승객을 환영하긴 한다지만, 이렇게 남몰래 들어오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블랙 스완
미안해, 차장님. 내가 무례했어. 열차가 기억의 정원에 이미 익숙하다고 생각해서 그만…. 현재 페나코니는 복잡다단한 상황이라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무명객뿐이야

 

단항
당신이 그 기억하는 자?

 

블랙 스완
만나서 반가워, 단항 씨.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 당신을 본 적이 있어. 그리고 부트힐 씨도… 초면이긴 하지. 그 아스다나 백참나무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그렇게 찾기 어려운 술을 고르는 것도 능력이야

 

부트힐
한참을 찾았다고, 기억하는 자! 거두절미하고 얘기하지. 네가 아는 걸 전부 털어놔

 

블랙 스완
그럴 생각이야. 하지만 그 전에 내 소개부터 할게. 난 기억의 정원의 기억하는 자, 블랙 스완이야. 아케론 씨에 대한 이야기는…

 

단항
나보다 본인이 더 잘 알겠지

 

아케론
반가워, 내가 아케론이야

 

부트힐
뭐?! 이 뿌려먹을 기억의 정원 녀석! 감히 날 배신해?!

 

아케론
미안, 내가 부탁한 거야. 어떤 이유로 페나코니에서 추방됐는데, 이 기억하는 자가 동행해준 덕분에 가족의 통제에서 은밀하게 벗어날 수 있었어

 

블랙 스완
사실 동행이라기보단 미행에 가까웠지. 과정도 그렇게 「은밀」하진 않았지만… 뭐, 아케론 씨가 그렇다면야


아케론
난 블랙 스완 씨한테 가족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서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연락해달라고 했어. 그게 너희였고

 

부트힐
신뢰? 하하, 하하하하하…. 이봐 깜찍이, 날 미치광이나 바보 취급하는 거냐?


아케론
이렇게 하지. 우선 네 몸에 구멍을 내고 안에 뭘 숨겼는지 확인하고 나서 다시 신뢰에 대해 얘기하자고……

 

아케론
그럴 필요 없어. 네 궁금증은 전부 풀어줄게.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내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면 시간이 더 많았겠지만, 지금은 이럴 수밖에 없어

 

부트힐
이럴 수밖에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아케론
이렇게 해야만 너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거든……

 

블랙 스완
은하열차가 아스다나 은하계를 벗어나도록 당장 워프시켜 줘

 

단항
……

 

폼폼
이봐, 그게 무슨……

 

블랙 스완
내가 봤을 때 악의가 담긴 말이 아니라 사실인 것 같아

 

아케론
단항 씨, 잠깐뿐이지만 난 당신의 동료와 동행한 적이 있어. 그들이 어딨는지도 알고. 아직은 무사하지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야

그리고 부트힐, 어느 정도 예상했겠지만… 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 갤럭시 레인저는 행적이 묘연하고 서로 간의 교류가 워낙 드물잖아. 이런 방식으로 「연락」할 수밖에 없던 날 이해해 줘

이래야만 진정한 갤럭시 레인저를 찾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래야만 오래된 약속을 지키고……

… 「그」의 유물을 주인에게 되돌려줄 수 있으니까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모든 비는 세계를 향한 하늘의 연민이다

비와 이슬은 인간 세상의 슬픔 때문에 흘러내리는 신의 눈물이야. 하지만 비와 이슬이 내린다는 건, 아직 신들이 이 세계를 향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방증이지

그러니……



아케론
이 비는 얼마나 오랫동안 내린 거죠?

 

???
한때 나 역시 자네처럼 비가 멈추길 바랐지. 그렇게 수년, 수십 년이 흘렀고… 결국 이 비보다 「희망」이 먼저 끝나고 말았네
자네가 말한 신은 존재하지 않나 보군

그러면서 노인은 계속 먼 곳을 바라보았다. 촘촘히 내리는 검은 빛속에서 연기처럼 변하는 무수한 손의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바닷속에서 하늘을 향해 뻗어져 나왔다

 

???
이제 내가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지……
평범한 사람이 운명의 길을 걷는 건 나룻배를 타고 수면을 건너며 굽이치는 행적을 남기고, 수많은 가능성의 파문을 밀어내는 것과 같지. 찰나에 끝나고 마는 일생과 달리 이 물결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존재의 흔적이 너무나도 강렬해 물결에 자신의 그림자를 남겼지

 

아케론
꼭… 바다 위의 그림자들처럼 말이죠

 

???
「혈죄령」은… 운명의 길을 걷는 자의 집념이네. IX의 그림자에서 탄생한 그들은 스스로를 당사자라고 여기며 무의식적으로 죽은 자가 생전에 했던 행동을 반복하지
그들은 「공허」에서 탄생해 「공허」로 향하며 무의미한 생을 보낸다네. 하지만 그 공허한 환영들이……
…한때 내 중요한 동료였지. 바로 갤럭시 레인저 말이네

 

아케론
그들을 지키고 계신 건가요?

 

???
지킨다고? 아니, 난 그들을 제도하고 있어
그건 참혹한 전쟁이자 우주를 뒤흔든 토벌이었네. 우주는 절멸 대군 「주로」의 죽음을 목격했지만, 그 대가는… 산증인 외에 그 대가를 기억하는 자는 아무도 없지
죽음도 불사하는 「수렵」의 의지는 생명이 끝날 때까지 잠재워지지 않네. 그래서 누군가는 이 망령들을 인도해야 해. 생전에 영웅이었던 이들을 「공허」의 꼭두각시가 되게 둘 순 없어
나 역시… 그 전장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 다시는 여정에 오를 수 없게 됐고, 오히려 이 일의 적임자가 되었지

 

아케론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혈죄령은… 그들이 아니에요

 

???
자네가 보기엔 의미 없는 일인 것 같나?
하지만 어떤 일은 의미가 없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법이지

 

아케론
……

 

아케론
제가 도울게요

 

???
무엇을 위해?

 

아케론
저 역시… 「공허」의 의미를 찾고 있거든요

 

???
…하긴, 보통 사람이라면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없었을 터
고맙군, 낯선 자여. 부디 이 여정에서 해답을 찾길 바라네

 

아케론
그전에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어요……
혈죄령의 행동이나 그들의 일상은 저희가 봤을 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만에 하나……
그게 죽은 자가 바라던 결과라면, 저희가 변화시키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
좋은 질문이야. 다만 대답하기 어렵군. 적어도 난… 아직 답을 모른다네
내가 아는 건 언젠가 나도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이지. 그 순간이 오면……
누군가 내 무덤 앞에 꽃다발을 놓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네



선데이
가족은 모든 이를 포용한다네. 사냥개 가문에게 수색을 멈추라고 전하지. 이제 더는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된다

 

당황한 꿈을 좇는 여행객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하루빨리 두 아이를 되찾고 가족에 합류하겠습니다…. 조, 조화를 찬미합니다!

 

선데이
…다음 사람은 앞으로 다가오도록

 

페페시 거상
오랜만이네, 페나코니에서 가장 주목받는 남자이자 참나무 가문의 차기 가주… 선데이 씨?

 

선데이
…그분께 우리와 함께해달라고 부탁드렸으니 시작해도 좋다

 

페페시 거상
뭐, 그렇다면 순서에 따라야겠지… 크흠! 죄를 저질렀으니 부디 내 죄를 용서해 줘! 아침 먹을 때 피자 반 조각과… 술슬래드 한 병을 남겼거든
난 이게 다야. 아직 율을 경문 같은 게 남았지? 있으면 빨리 끝내줘. 모터볼 경기 보러 가야 하니까

 

선데이
선행을 베풀어서… 받아야 할 죗값을 마땅히 치르겠는가?

 

페페시 거상
「죗값」? 또 성인인 척하는 건가? 말해두는데, 가족에겐 날 심판할 자격이 없어. 넌 더더욱 그렇고
가족이 한 짓을 누가 몰라? 그새 「시계궁」을 잊은 거야? 웃기지 마, 이 닭 날개 머리야. 나한텐 안 통해. 꿈을 좇는 여행객은 속여도 너 자신까지 속이진 말라고
다음엔 경문을 읽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 봐. 어떻게 참나무 가문이 지금의 위치에 올라섰고… 네가 아무 걱정 없이 높은 곳에 앉아 모든 이를 내려다보게 되었는지 말이야

 

페페시 거상
이 정도 고해 시간이면 「화합」의 낙원에 들어가기에 충분하겠는걸? 그럼 이만 가볼게. 부디 당신되길 바라지. 흥… 괜히 돈 날리게 하지 말라고

 

선데이
……

 

선데이
……

 

선데이
세 얼굴의 영혼이시여, 제 질문을 들어주십시오……
강자의 권위와 부가 죄를 덮을 수 있다면, 누가 그들을 심판합니까?
약자가 생존을 위해 어떤 대가도 감수해야 한다면, 누가 그들을 보호합니까?
순수한 영혼마저 죄를 저지른다면, 누가 그들을 위로합니까?
정말 「약자를 돕는 강자」가 낙원의 근간이라면……
누가 그들을 괴로운 세상에서 울부짖도록 내버려둔 겁니까?


 

로빈
오빠… 오빠…?

 

로빈
…오빠? 괜찮아?

 

선데이
…괜찮아. 오랫동안 일만 하다 꿈이 흐르는 암초까지 다녀왔더니 적응이 안 되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웰트
조화의 축제를 위해 밤낮없이 노력했는데, 이런 일을 겪게 되다니. 아무리 스텔라론이 중요해도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선데이
하하, 괜찮습니다. 원래 조화의 축제는 은하의 행복과 조화를 드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진실을 알게 된 이상 즉시 멈춰야지요

 

로빈
저희 남매의 소원은 모두가 행복해지는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든 꿈의 주인에게 얻어내야죠.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꿈의 주인도 분명 이해해주실 거예요

 

웰트
협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도… 무대에 서는 일은 거절할 거예요. 「조율사」가 없다면 「하모니 성가대」도 강림하지 않을 테고, 축제도 평범한 공연으로 전락하겠죠

 

웰트
두 분의 다짐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되는군요
그러고 보니 페나코니에 온 뒤로 꿈의 주인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네요. 5대 가문의 가주는 들어봤지만, 「꿈의 주인」에 대한 얘기는 잘 없더군요

 

선데이
꿈의 주인께선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저희조차 만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대한 사안이라 이번에는 직접 오셔서 협상하겠다고 하셨죠

 

로빈
웰트 씨는 지난 몇 년을 통틀어 꿈의 주인을 만난 최초의 손님이 되실 거예요

 

웰트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론을 얻는다면 좋겠네요

 

선데이
네, 그러길 바라야죠

 

로빈
시간이 다 됐으니 전 오빠와 함께 접견 준비를 하러 가볼게요…. 급박한 상황이라 잘 신경 써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웰트
괜찮습니다, 전 여기서 기다리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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