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가르는 무언의 거인
"에이언즈(Aeons)"라 불리는 초월적 존재들 사이에서도, 클리포트(Qlipoth)는 특별한 위상을 지닌다.
그는 창조도, 파괴도 추구하지 않는다.
어떠한 세속적 영광도 바라지 않는다.
오직 하나, "보존"이라는 절대적 사명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별들의 죽음조차 무심히 관조하며,
성운이 무너지고 은하가 재편되는 긴 시간 속에서도,
그의 망치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클리포트는 소리 없는 망치질로 우주를 갈라내고,
그 손길 하나하나에 세계는 또 다른 경계를 얻게 된다.
보존의 길을 걷는 자
다른 에이언즈들은 자신만의 이념을 확장하거나, 세상을 새롭게 바꾸려 한다.
그러나 클리포트는 다르다.
그는 변화보다 질서를, 발전보다 보존을 선택했다.
끝없이 흘러가는 별바다 속에서, 그는 무너져가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봉인했다.
클리포트는 묻지 않는다.
누구의 부탁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의지의 발현 그 자체로, 단 하나의 명령을 수행한다:
"지켜라."
그가 쌓는 벽은 단순한 장벽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 차원과 기억을 가르는 절대적 경계이며,
세계가 부패하고 왜곡되는 것을 막는 최후의 성역이다.
우주가 스스로를 갉아먹는 그 순간조차,
클리포트는 고요히, 묵묵히, 벽을 쌓는다.
앰버기원과 클리포트의 망치질
스타레일 세계의 문명들은 하나의 독특한 시간 체계를 사용한다.
그것이 바로 "앰버기원(Amber Era)"이다.
이 연대는 어느 영웅의 탄생이나, 제국의 수립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클리포트가 우주에 첫 번째 벽을 세우기 시작한 순간,
별과 별 사이를 가르는 망치질이 울려 퍼진 그때부터, 시간이 새롭게 흐르기 시작했다.
왜 벽을, 왜 망치질을 시간의 기준으로 삼았는가?
그 답은 단순하다.
변화하는 것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황금빛 제국은 무너지고, 영웅은 잊힌다.
그러나 클리포트의 망치질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별이 죽고, 문명이 스러져도,
그는 영원의 리듬으로 성벽을 쌓는다.
"망치가 울리는 한, 세계는 아직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 신념은 세대와 세대를 넘어,
우주의 가장 깊은 심연까지 퍼져나갔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그 리듬을 따라 시간을 잰다.
벽을 둘러싼 신념과 욕망
클리포트의 성벽은 단순한 방어물이 아니다.
그 벽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분리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현실을 고정하는 힘이다.
- 별과 별의 경계
- 세계와 세계의 구분
- 존재와 존재의 분리
모든 것은 벽을 통해 질서를 얻는다.
축성가(Architects)는 자신들이 쌓는 벽을 신성한 사명으로 여기며,
우주의 보존과 연결된 신념을 품고 있다.
그들은 외부로 나아가기보다는, 자신들의 세계인 야릴로-VI에 머물러 성벽을 세우고 신성시하는 삶을 이어간다.
반면, 스타피스 컴퍼니(Interastral Peace Corporation, IPC)는 보다 현실적이다.
그들은 클리포트가 쌓는 벽의 개념을 이용해,
건축 자재와 같은 자원을 거래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스타피스 컴퍼니는 우주 각지에 걸쳐 무역망을 확장했고,
벽 건설을 명분 삼아 은하계를 가로지르는 경제 체계를 구축했다.
축성가는 숭배를, 스타피스 컴퍼니는 이익을 추구했다.
그러나 클리포트는 그 어떤 숭배에도, 그 어떤 거래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오직 자신의 길을,
오직 자신의 망치질을 계속할 뿐이다.
세상의 갈망과 탐욕이 소용돌이쳐도,
클리포트는 고요하게, 벽을 쌓는다.
클리포트가 지키는 것
클리포트는 세상의 변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왜곡"과 "부패", "질서의 붕괴"는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그가 지키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의 순환,
그리고 그 순환이 온전히 흐를 수 있도록 하는 질서다.
그의 벽은 단순한 물리적 경계가 아니다.
그것은 차원과 현실 그 자체를 고정하는 틀이며,
모든 존재를 서로 구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우주의 토대다.
- 별의 궤도
- 문명의 기억
- 생명의 흐름
그 무엇도,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클리포트는 고독하게 벽을 세운다.
그의 벽은 외부의 혼돈을 막는 방어선이자,
내부의 균형을 지키는 최후의 선이다.
보존이 없다면, 모든 존재는 의미를 잃고 서로 뒤섞여 파멸할 것이다.
클리포트는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에이언즈들과의 대비
클리포트는 다른 에이언즈들과 근본부터 다르다.
- 나누크(Nanook)는 파멸을 설계한다. 그는 문명과 생명을 무너뜨리고, 종말을 서술한다.
- 아키비리(Akivili)는 개척을 상징한다. 그는 별과 별을 잇고, 새로운 항로를 연다.
그러나 클리포트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고,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지킨다".
세계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숨겨진 기둥'이자,
혼돈과 붕괴를 막아내는 마지막 수호자다.
변화와 발전이 생명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존과 안정 또한 생명이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조건이다.
클리포트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영원의 경계에서
클리포트는 묻지 않는다.
그는 별이 꺼지는 소리를 듣지 않고,
제국이 무너지는 아우성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오직 자신의 망치질을, 고요한 의무를 수행할 뿐이다.
별과 별을 가르는 벽.
시공과 기억을 구분하는 경계.
차원을 지탱하고 존재를 고정하는 틀.
그 벽 하나하나에 새겨진 것은, '멈추지 않는 신념'이다.
우리는 앰버기원을 사용해 시간을 기록하고,
그 기준이 된 벽을 쌓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그러나 잊지 않고 기억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
별빛 너머에서는 여전히,
클리포트가 묵묵히 벽을 쌓고 있을 것이다.
별이 꺼지고, 세상이 무너질 그 순간까지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를 대신해,
우주를 대신해,
보존의 망치를 높이 치켜들 것이다.